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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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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종이라는 말은 한지 ‘지(紙)’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지(紙)’의 어원은 ‘비단 견(絹)’에서부터 비롯된다. 중국에서는 종이가 사용되기 전 이미 비단에 글을 써왔다. ‘비단 견(絹)’자의 ‘실 사(絲)’변을 따오고, 글자의 씨앗이 된다는 이유로 ‘씨(氏)’ 자를 합쳐 만든 글자가 ‘지(紙)’이다.

또, 종이라고 하는 말에는 서양 종이도 포함되므로 이를 구분하기 위해 옛날 중국에서 만든 종이는 한지(漢紙)라고 부르고, 이것을 더욱 발전시킨 한국의 전통적인 종이를 한지(韓紙)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종이의 기원이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으나, 고대 사회 때부터 종이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후한말 낙랑시대(樂浪時代) 고분의 하나인 채협총에서 벼루집이 발견됨으로써 당시에 종이가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또 한 이 고분의 밀폐된 철판 속에서 종이로 보이는 섬유의 형태가 물에 젖어 덩어리 진 것이 발견되었다. 다만 종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고 다만 당시에 종이가 만들어진 것은 약 1400년 전 고구려 승려 담징에 의한 것이 그 효시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고구려 담징은 서기 610년 고구려 영양왕 21년에 왕의 사신으로 일본에 가서 제지법과 제묵법 및 채화법과 맷돌의 제조법을 전수하여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지 공예를 알기 위해선 종이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종이의 역사와 더불어 한지 공예의 역사도 열렸으니 말이다.

종이의 기원은 약 5~6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일강 유역에서 살던 이집트인이 야생초의 일종인 파피루스라는 수초를 기록용 재료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쪼개놓은 파피루스의 줄기를 여러 겹 상하로 겹쳐 놓고 압착하면 끈끈한 수액이 흘러 나와 서로 붙게 되는데 이를 건조시켜 기록용 용지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당시에 쉽게 구할 수 있었던 파피루스는 얇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측면으로 여러 장 겹치면 사용하기 편한 두루마리 형태로 만들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기옥은 전하고 있다.

종이는 처음에는 물통에 각종 인피 섬유를 묽게 푸렁 발로 한 장씩 떠서 만들었다. 이른바 수록지였다. 오늘 날처럼 기계로 다량 생산하는 시설은 1808년에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세계 여러나라들의 백과사전이나 전문가들이 설명한 종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다드 헌터(Dard Hunter)의 제지사에 의하면, “종이는 일종의 식물 섬유가 평평하고 매끄러운 발 위에 내려 앉아 있는 얇은 재료이다. 여기에 첨언해서 진정한 종이를 만들려면 반드시 고해(叩解)처리한 섬유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한다.

미국의 백과사전에는 “종이는 물 위에 떠 있는 부분을 발로 건져낸 것으로 식물 섬유들이 서로 얽혀 있는 얇은 판상의 물질이다.”라고 써있다. 웹스터(Webster) 대사전에는 “종이는 넝마, 펄프, 기타식물성 섬유로 만든 얇은 판상의 것이다. 글씨를 쓰거나 인쇄하고 벽을 바르며 포장하는 데 쓰는 물건이다.”

소비에트(Soviet) 백과사전에는 “종이는 특수가공을 거친 식물 섬유층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식물 섬유는 가공될 때 섬유 상호간에 결합력이 있어 관상으로 결합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종이는 섬유와 섬유 사이가 비어 있는데 표면은 곱게 하고 종이를 불투명하게 하기 위해 광물성 분말을 섞었으며, 습기나 인쇄 잉크가 너무 빨리 흡수되지 않도록 야교나 전분, 송지 비누 등으로 흡습성을 적게 하였다. 이를 사이지(sizing) 작업이라 한다.

산업의 발달과 함께 종이의 용도도 다양해졌다. 용도에 따라 여러 가지 화공 약품을 도포하여 사진 인화지, 전사지, 복사지 등 헤아리기 어려운 많은 종이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단순한 필기용으로 출발한 종이가 다양한 기능을 갖게 됨에 따라 어떤 학자는 종이의 기능을 6개로 크게 나누어 ‘6W'로 말하기도 한다. ’6W'는 기록하고(Write), 포장하며(Wrap), 씻고 닦은 다음 버리고(Wipe and Waste), 일회용으로 만들어 몸에 걸치며(Wear), 팩시밀리나 컴퓨터 용지처럼 일을 하고(Work), 사진이나 그림으로 의지와 감각을 나타내는 기능(Will) 등은 간략하게 표시한 것이다.

세계에서 최초로 종이를 발명한 사람은 중국 후한 때의 채륜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채륜은 발명자라기보다 완성자 또는 개량자로 보는 설이 대두되고 있다. 왜냐하면, 근래에 채륜 이전의 종이를 볼 수 있는 자료가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제지 기법이 우리 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고구려 소수림 왕때 불교가 전래되면서 유입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약 30여년 전 (1963~65년) 북한 평양의 정백동(貞栢洞)과 더불어 “마분지 같은 종이 조각”이 출토되었다는 발굴기가 북한의 사회과학원에서 발표된 바 있다. 이로써 한반도의 종이 사용은 기원전으로 소급되었으며, 지금까지 추정인 4세기설보다는 일약 3세기 이상이 소급되게 되었다. 문제는 이 종이가 중국 것이냐 한반도에서 우리 선조들이 뜬 종이야 하는 것으로 집약되었는데, 거기에는 종이 원료와 지질에서 그 해결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하겠다.

도대체 초창기의 인류의 종이 원료는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중국에서 후한대 사람인 채륜보다 약2세기 이전 것으로 소급되는 종이들이 한결같이 마(麻)섬유지임이 판명되고 있지만, 그것은 서민들의 옷인 베옷이 그 원료의 제공원이었을 것을 짐작케 하고 있다. 정백동 2호 고분의 출토지 역시 마섬유지일 가능성이 크며, “마분지 같은 종이 쪼가리”라는 기술이 시사하는 바 매우 열악한 지질의 종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그 지질이 중국 전한시대의 출토지와 대동소이한 종이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겠다. 그렇다면 이 같은 초기의 종이는 구태여 만 리 밖 중국의 서안 등지에서 가져오기 보다는 북한의 강가에서 우리 선조들의 생활 주변에서 나온 풍부한 누더기(베옷)를 두들겨 빨고 햇빛에 바래는 일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피어난 섬유들의 엉김에서 힌트를 얻어 손쉽게 만들어 씻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실제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BC37~)는 건국 초부터 글자를 썼으며, 고서적 5권을 간추려서 역사책 100권을 편찬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종이라는 물건은 고구려의 경우 오래 전부터 익숙해 있던 물건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그 후 찬란하게 전개된 우리 한지의 우수한 지질과 인쇄문화 등과도 유관하며 가일층의 종합적인 연구가 기대된다.

[한지의 만드는 법]

1. 11월~12월에 베어낸 닥나무를 삶는다.
2. 삶은 닥나무의 껍질을 벗긴다. 겉껍질이 붙은 채로 벗긴 것을 흑 또는 피닥이라 한다.
3. 흑피를 철분이 없는 흐르는 냇물에 10여시간 담가 두어 불린 다음 겉껍질을 칼로 벗겨 낸 것을 녹피, 푸른 중간 껍질까지 다 벗겨낸 백피라 한다. 보통 생닥나무 10kg에서 2kg의 마른 흑피, 1kg의 백피를 얻을 수 있다.
4. 백피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하루동안 물 속에 담근다.
5. 백피를 40~50cm로 짤라 잿물에 삶는다.
6. 잿물기가 빠지면 대나무 발에 올려서 다시 찐다. 기름기를 빼는 과정이며, 종이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7. 흐르는 물에 씻고, 햇볕에 말려서 표백한다.
8. 충분히 짠 다음 티를 고른다.
9. 닥을 널따란 닥돌 위에 올려놓고 나무 방망이로 2~4시간 동안 곤죽이 될 때까지 두들겨 죽같이 만든다.
10. 닥과 닥풀(황촉규의 뿌리에서 추출한 즙액)을 잘 섞은 다음 물질(나무판에 발을 놓고 그것을 여러번 흔드는 작업)을 한다.
11. 300~500장을 떠서 나무판에 쌓아 놓는다. 일정 시간이 흐른 뒤 이 위에 판을 대고 돌로 눌러 1차 탈구시킨다.
12. 압착해 물이 다시 빠지면 건조대에서 한 장씩 건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