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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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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는 닥나무(楮)껍질을 원료로 하여 만든 우리나라 고유의 수초지(手秒紙 Hand-made-Korea)를 말한다.
이는 닥나무 껍질을 잘게 부수고 갈아서 접착제인 황촉규 뿌리의 점액을 첨가하여, 대나무 발로 떠서 섬유가 서로 얽히게 하여 건조시킨 종이이다.

발이 촘촘하고, 종이가 두꺼우며, 질긴 것이 특징이고, 빛이 희고 좋아서, 신라 때부터 중국에서는 백무지(白無紙)라고 알려졌으며, 송나라 사람들은 여러 나라 종이의 품질을 평가할 때 고려지를 최상의 것으로 여겼다.

그와 같은 흔적은 오늘 날도 찾을 수 있다. 국보 196호 신라 백지묵서방 광불화엄경(白紙 墨書方 廣佛華嚴經 : 755년경, 호암미술관 소장)에는 “종이는 매우 희고 광택이 있으며 표면은 평활하고 강한 광택이 있다. 티라든가 풀어지지 않은 섬유 덩어리도 적은 아름다운 종이이다. 얇은 종이임에도 불구하고, 먹이 번지지 않았다. 비추어보면 전체적으로 조화있으며, 만지면 파닥파닥하며 치밀하고 밀도가 높은 종이로 보여진다. 종이의 색이 매우 연한 것을 보면 하얀 종이를 만들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종이의 밀도는 0.64g/cm3으로 보통 닥나무 종이의 2배 정도의 밀도를 보이며 표면에 먹의 스며드는 것을 관찰하면 종이 표면에 먹의 침투를 막기 위한 무엇인가를 바르고, 다듬이질, 문지름 등의 가공을 했다고 생각된다. 이 종이는 원료의 닥나무껍질에서 최종 가공까지 일관되게 정성들여 만들었을 것이다. 제지기술의 뛰어남을 보면 고대 한국의 유명지(有名紙)의 하나로 보여진다.”

이처럼 뛰어난 신라의 제지 기술은 고려시대로 이어져서 더욱 이름을 얻었다. 송나라와 원나라는 섬세하고 희고 빛이 나고 매끄러운 고려 백추지를 많은 양 수입했으며, 중국 역대 제왕의 진적을 기록하는 데에 고려지만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지의 이러한 성가는 조선 전기로 이어졌다. 오죽 종이질이 좋고 명성이 자자했으면 한지가 중국과의 사대외교에 필수품으로까지 한 몫을 했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 와서 신라의 백무지는 기술적으로 더욱 발달하게 되었다. 고려 인종 23년(1145)부터 명종 18년(1188)까지 전국적으로 닥나무재배를 장려하고, 민간 제지업도 지원하였다. 또한 ‘지소’하는 정부의 제지 기관이 설치되어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고종 19년(1882)까지 존속한 조지서는 인쇄술의 발달, 향교, 서원, 서당 등의 설치와 생활 양식의 고급화 등으로 날로 증가하는 종이의 수요를 감당하였다. 종이는 옛날 지폐인 저폐, 서적 출판, 지갑 등과 도배, 습자용 문책 등 그 용도가 매우 다양하였고, 그만큼 수요도 대단했다.

따라서 나라에서 저심기를 장려하였고, 세종 10년 이조실(李朝實)에 의하면 박서생을 일본에서 사신으로 보내 생마를 이용한 제지법을 실습토록 하였고, 성종 6년에도 지장 박비회를 북경에 보내어 생마를 사용하여 만드는 제지법을 배워 오게 하였다. 우리 고유의 제지 기술을 토대로 외국에서 배워 온 방법을 응용하여 여러 가지의 직물을 생산하였다. 한 말 러시아 대장성의 조사보고서인 [한국지]에 조선시대 종이의 특징이 잘 나와 있는데, 그 보고서에는 “한국의 종이는 섬유를 빼어 만들어 지질이 서양 종이처럼 약하지 않으며, 어찌나 질긴지 노끈을 만들어 여러 가지 공작한다. 또한, 종이에 결이 있어 그 결을 찾아 찢지 아니하고는 베처럼 찢어지질 않는다. 한국에서 제지업은 가장 발달한 공업에 속하는데 중국도 따라오지 못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중국에 수출되어 지금도 중국에는 조선 종이로 벽을 바르고 사는 대관들이 많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호암 미술관 소장의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754년 경덕왕 13년)]에는 “닥나무에 향수를 뿌려가며 길러 껍질을 벗겨내고, 그 껍질을 맷돌로 갈아서 종이를 만든다.”라는 기록이 있다.

우리 한지의 우수성을 올리는 이야기 한 토막은 오늘 날도 많은 이들의 입에서 회자되고 있다. 독일의 쿠텐베르크 성서가 겨우 5백년의 수명을 가지고 열람조차 불가능한 암실에서 모셔져 있는 반면, 수백년 묵은 우리의 고서적들이 박물관이나 도서관 또는 골동품 상가에서 나뒹굴다시피 쌓여 있는 오늘의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처럼 뛰어난 제지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한지에 얽힌 여러 가지 기록이 있는데, 그 공통점은 한지는 모두 질기고 두텁고 단단하다는 것으로 호평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새로운 서구 문명의 유입과 더불어 전통한지는 소외되었다. 1882년에 400년여간이나 존속한 조지서가 철폐되고, 1901년 용산에 양지제지소가 설치되어 펄프를 원료로 하는 각종 종이가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한지는 점점 밀려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07년부터 우리 사회의 생활환경이 나아지게 되면서 종이 수요도 개성화, 다양화되어 한지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게 되었다.

한지는 연해보이면서도 질기고, 소박하면서도 품위가 있어 서양 종이가 도저히 따라온 수 없는 따뜻함과 은은함이 흘러서 한지를 은근과 끈기로 표현되는 우리의 민족성을 대표하는 문화 유산이다.